시애틀 한인사회의 산 증인으로 불려온 이현기 전 시애틀한인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101세.
고인은 1967년 시애틀 한인회 창립 당시 참여한 6인 창립멤버 중 한 명으로, 이후 제4대와 제5대 시애틀한인회장을 역임하며 동포사회의 결속을 다졌다. 당시 시애틀에는 한인 200명과 유학생 60명이 전부일 정도로 이민사회의 규모가 작았지만, 고인은 가가호호 방문하며 주소록을 만들어 동포들의 상호부조를 이끌어내는 등 헌신적인 봉사로 시애틀 한인사회의 기틀을 다졌다.
◈ 차세대 교육과 한미 문화교류에 앞장
고인은 한인 2세 교육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시애틀 교육부에 이중언어 교사의 필요성을 건의해 최초의 한국어 이중언어 교사가 임명되도록 이끌었으며, 시애틀의 대표적인 여름 축제인 시애틀 씨페어(Seafair)에 한인들의 참가를 성사시켜 한국 문화를 현지에 알리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1993년 시애틀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는 한국 측 유일한 서포터로 참여해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APEC 위원장, 마이크 로리 워싱턴주 주지사, 노마 라이스 시애틀 시장으로부터 감사증을 받기도 했다.
고인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시애틀시와 대전시의 자매결연을 성사시키고, 시애틀 대전공원 내 팔각정 건립을 주도한 것이 꼽힌다. 1994년 노마 라이스 당시 시애틀 시장의 대전 방문에 대한 답방 성격으로 1995년 시애틀 대전공원 조성이 시작됐으며, 1998년 8월 5일 준공된 팔각정은 한국 전통 건축미를 미국 현지에 구현한 문화유산으로 오늘날까지 평가받고 있다. 고인은 생전 “4개의 컨테이너 분량의 자재와 11명의 한국 기술자가 3개월간 공사에 참여했다”고 당시를 회고한 바 있다.
이 밖에도 고인은 제2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시애틀협의회장을 두 차례 역임하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활동에 힘썼고, 20년 넘게 취업알선센터 회장 및 이사장으로 봉사하며 한인들의 경제활동과 자립을 도왔다. 대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카네기홀 공연을 주선하고 47명 규모의 워싱턴주 경제사절단의 대전 방문을 이끄는 등 한미 교류 증진에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인사회와 모국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인정해 2019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다.
고인은 100세를 넘어서도 직접 운전하며 독립적인 생활을 이어갈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여 주변의 귀감이 됐다. 지난해 2월 11일에는 김원준 광역시애틀한인회장과 유영숙 한친회장이 뜻을 모아 시애틀한인회관에서 고인의 백수(白壽)를 기념하는 상수연을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서은지 당시 주시애틀총영사를 비롯해 역대 한인회장단과 동포사회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고인의 100세 생신을 축하했다.
당시 서은지 총영사는 축사를 통해 “이현기 회장님은 시애틀 한인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우리가 닮아야 할 모범이자 의논하고 격려받을 수 있는 분”이라며 “100세를 맞이한 지금도 시애틀 교민사회를 든든히 지켜주시는 고목나무 같은 존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고인은 감사 인사에서 “한인회를 시작한 것은 ‘뜻이 있으면 필이 있다’는 말처럼 동포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작은 뜻에서 비롯됐다”며 역대 회장들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후배들에게 한인사회의 화합과 단결을 당부했다.
1960년대 아직 규모가 작았던 시애틀 한인사회의 초창기부터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동포사회와 함께해온 고인은 말 그대로 시애틀 한인 이민사의 한 페이지를 직접 써 내려간 원로였다. 한인회 창립에서부터 차세대 교육, 한미 교류와 자매도시 결연에 이르기까지 고인이 남긴 발자취는 오늘날에도 시애틀 한인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시애틀 한인사회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고 이현기 회장은 이제 세상을 떠났지만, 한인사회를 향한 그의 헌신과 발자취는 후대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유가족으로는 장남 이석인 씨와 아들 이석보 씨를 비롯해 손자·손녀들이 있다.
출처 : 시애틀코리안데일리(http://www.seattlekdaily.com)
[사진=김승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