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시애틀협의회(회장 황규호)는 6월30일 오후 6시 벨뷰 시청(450 110th Ave NE)에서 정진호 포스텍 친환경소재대학원 교수를 초청해 평화통일 강연회 ‘청포도의 꿈’을 개최했다. 주시애틀 대한민국 총영사관과 유니뱅크(UniBank)가 후원한 이번 행사는 제22기 민주평통의 슬로건인 ‘함께 만드는 평화, 더 나은 미래’ 아래 마련됐다. 사회는 오명규 씨가 맡았다.
행사는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됐으며, 황규호 회장 개회사, 박미조 부총영사 축사, 이수잔 상임고문단장 축사, 강연자 약력 소개, 정진호 박사 특별강연, 질의응답, ‘우리의 소원은 통일’ 제창 및 단체사진 촬영 순으로 진행됐다.
황규호 회장은 개회사에서 “급변하는 국제질서와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특별히 오늘 주중 저녁, 먼 거리와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주신 여러분의 열정 자체가 한반도 평화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연 부제인 ‘청포도의 꿈’에 대해 “청포도에는 분명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이니 그 진짜 의미를 함께 찾아보자”고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박미조 부총영사는 축사를 통해 “평화는 대결이 아닌 대화에서 시작되고, 신뢰는 하루아침이 아니라 꾸준한 소통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750만 재외동포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갖고 지켜나가야 할 공동의 가치”라며 “시애틀 동포사회가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존중하며 하나의 공동체로 성장해 온 모습은 평화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수잔 상임고문단장은 “청포도는 아직 완성된 열매가 아니라 서서히 익어가며 가능성과 기다림, 미래를 향한 희망을 품고 있는 열매”라며 “평화통일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함께 노력할 때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정진호 박사는 평화경제·통일 분야 전문가이자 현재 포스텍 친환경소재대학원 교수다. 서울대학교 금속공학 학사·석사·박사를 거쳐 미국 MIT 박사후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연변과학기술대학교 교수와 평양과학기술대학교 설립 부총장 및 박사원장, 토론토대학교 방문교수, 한동대학교 통일한국센터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민주평통 자문회의 경제과학분과 상임위원, 통일부 평화통일고문회의 정책자문위원, 유라시아 원이스트포럼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 박사는 서울 태생이지만 중국 연변, 북한 평양, 캐나다, 한국을 오가며 삶을 일군 이력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동서남북을 다 다니며 산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그는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육로로 여행한 거의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특이한 이력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유학 시절 MIT에서의 NASA 프로젝트 연구원 자리와 영주권 제안을 뒤로하고 조선족 교육과 평양과기대 설립에 헌신한 그의 삶은 이날 강연에서 청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 박사는 ‘시대의 변곡점에서 바라본 코리아연합과 남북경제협력의 신세계’라는 긴 주제를 한마디로 ‘청포도의 꿈’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포항시 지도를 보면 위쪽에 청진리가 있고, 북한의 청진에는 포항동이 있다”며 “남한의 대표적인 제철도시 포항과 북한의 대표적인 제철도시 청진을 쇳물로 이어 길을 만들자는 것이 청포도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청포도란 이름은 청진(靑津)의 ‘청(靑)’과 포항(浦項)의 ‘포(浦)’를 합친 것이다.
이 구상에는 두 저항시인의 서사가 담겨 있다. 포항에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저항시인인 이육사의 문학공원이 있으며, 청진에는 윤동주 시인의 고향인 포항동이 있다. 정 박사는 “두 저항시인의 서사를 오늘의 현실로 끌어와 미래의 평화경제 구상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육사의 시 ‘청포도’의 ‘내 고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청포도가 서서히 익어가듯 남북협력도 차근차근 현실로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다.
실제 구상의 핵심은 북한 무산의 풍부한 철광석 자원과 남한의 친환경 제철 기술을 결합하는 것이다. 그는 “북한 무산에는 남북이 100년 이상 함께 사용할 수 있는 50~70억 톤 규모의 철광석이 매장돼 있다”며 “반면 우리 포스코는 호주와 브라질에서 30%의 물류비를 물고 철광석을 들여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포스코가 개발·운영 중인 파이넥스(FINEX) 공법과 수소환원 제철법을 북한 청진에 적용해 남북이 함께 스마트 그린 제철소를 세우는 것이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탄소국경세(CBAM)와 친환경 산업 전환 시대가 다가오면서 기존 제철 산업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청포도 프로젝트는 북한을 돕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유럽의 선례를 통해 청포도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그는 “독일과 프랑스는 30년 전쟁, 보불전쟁, 1·2차 세계대전을 치른 철천지원수였지만,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만들어 전쟁을 멈추고 결국 유럽연합(EU)의 토대를 만들었다”며 “수십 년을 싸운 남남 타민족도 해냈는데 같은 민족인 우리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근거로 들었다. “80년 전에는 주변 강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원치 않는 분단과 전쟁을 그냥 경험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과학기술·K문화·민주주의 역량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라가 됐다”며 “분단 문제만 해결된다면 세계가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정세, 인공지능(AI)과 제조업 재편 등 세계 질서의 변화 속에서 한반도가 새로운 시대의 변곡점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대한민국은 디지털과 피지컬, 즉 AI와 제조 역량을 동시에 갖춘 드문 나라”라며 “남한의 기술, 북한의 자원, 해외동포의 네트워크가 결합될 때 동북아의 새로운 골든 허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이번 강연 직전인 6월25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코리아 피스 컨퍼런스에서도 미국 연방의원들에게 청포도 프로젝트를 영어로 발표했으며, 이후 시애틀을 찾아 이번 강연을 이어간 것이다.
이날 강연에서 특히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정 박사의 개인적 경험 이야기였다. 그는 MIT 유학 시절 지도교수가 제시한 영주권과 고연봉 자리를 마다하고 1990년대 중국 연변으로 건너가 조선족 청년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어 2003년에는 세계 최초의 외국인 설립 대학을 평양에 세우겠다는, 당시 누구도 믿지 않았던 ‘미션 임파서블’에 뛰어들어 평양과학기술대학교(평양과기대) 설립 부총장을 맡았다.
그는 “처음 들어갈 때 길도 없어 돌을 치우고 길부터 닦았다”며 “성공하면 비전을 얻고 실패하면 사기꾼이 된다는 리스크를 안고 7년을 달렸다”고 회고했다. 막내딸이 태어났는데도 아빠 얼굴을 몰랐을 만큼 가정을 돌볼 여유도 없었지만, 결국 준공식을 갖고 아내를 처음으로 평양에 데려갔을 때 아내가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특히 평양과기대에서 남한 학생과 북한 학생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함께 농구·배구를 하며 친구가 된 경험을 소개하며 눈길을 끌었다. 그는 “처음에는 서로 경계하고 두려워했지만 젊은 세대는 함께 놓으면 금세 가까워진다”며 “지금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못 잊는 친구가 됐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기성세대들이 그 길을 막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남과 북의 다음 세대가 서로 원수가 아닌 친구이자 동무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임이자 민주평통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강연 말미에서 정 박사는 “청포도 프로젝트는 단순한 철강사업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통일,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비전 상품”이라며 참석자들에게 함께 뜻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30년 전 저는 연변에서 비전 상품 하나를 받아 인생 전부를 올인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 이 청포도 프로젝트라는 비전 상품을 사실 분이 나타나야 이것이 현실이 된다”고 말했다.
행사는 참석자 전원이 함께 “가자 청진으로, 오라 포항으로”라는 구호를 외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제창한 뒤 마무리됐다.
이번 강연회는 시애틀 한인사회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재외동포로서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는 뜻깊은 자리로 평가됐다. 민주평통 시애틀협의회는 앞으로도 동포사회와 함께 평화통일 공감대를 넓히고 미래세대와 소통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정진호 박사 주요 저서: 『울독 아리랑(동해안 12도시 이야기)』(2023), 『21세기 공학과 기독교 인문학이 만날 때』(2022), 『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상·하)』(2021), 『기독교와 공산주의, 기호·서북 지역갈등 및 선교지 분할』 외 다수.
출처 : 시애틀코리안데일리(http://www.seattlekdaily.com)
[사진=김승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