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오페라, ‘코리아 데이’ 전통으로 자리매김… 제3회 행사 3천여 관객 열띤 호응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공연과 함께 한국인 성악가의 특별 강연도

전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인의 날(Korean Day)’을 정례 행사로 개최하는 시애틀 오페라가 5월 10일 제3회 행사를 성황리에 마쳤다. 5월 ‘아시아태평양원주민 문화유산의 달'(AAPHI)을 맞아 기획된 이번 행사는 푸치니의 대표작 ‘토스카’ 공연과 함께 시애틀 오페라의 전당인 맥카우 홀(McCaw Hall)에서 진행됐다.

주시애틀 총영사관과 시애틀 오페라가 공동 주최한 이날 행사는 2,900석 규모의 시애틀 오페라 하우스를 가득 채운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진행됐다. 2023년 5월 시작되어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이 행사는 독일인의 날과 함께 시작됐지만,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것은 코리안 데이만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

오페라와 한국 정서의 만남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중에 하나는 소프라노 이연지가 진행한 20분간의 프리쇼 강연이었다. 2017년 시애틀 오페라에서 ‘아메리칸 드림(An American Dream)’ 주인공으로 데뷔한 이연지는 현재 아이다호 오페라, 버지니아 오페라, 앵커리지 오페라 등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성악가다.

이연지는 강연에서 “푸치니는 사람의 심장 소리를 작곡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이탈리아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심금을 울리는 특징을 가진 작곡가”라며 푸치니 음악의 보편성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토스카의 대표 아리아 ‘비시 다르테(Vissi d’arte,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한국의 ‘한’과 아리랑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며 “한국인의 ‘한’이라는 정서가 이탈리아 오페라를 부르는 데 딱 맞는 연결고리가 된다”고 설명했다.

오페라 ‘토스카’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토스카는 1800년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벌어지는 24시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정치적 탄압과 희생, 감시 속에서 투쟁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유를 위해 희생하는 내용은 1900년 초연 당시 우리나라가 대한제국 시기로 독립운동을 하던 시기와 맞물려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고 역사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한국인 테너 이용훈이 남자 주인공 카바라도시 역으로 시애틀 오페라 무대에 섰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 유수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용훈은 악역 스카르피아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공연 후 진행된 포스트쇼 Q&A 세션에서 이용훈은 감격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21년간 세계 각국의 오페라극장에서 활동했지만, 이렇게 한국인 관객을 위해 개최하는 곳은 시애틀이 처음이다. 이스라엘과 영국에서 영사관 초청으로 식사를 한 적은 있지만, 이런 공식적이고 대규모 행사는 처음이라 매우 뜻깊고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용훈은 또한 한국인으로서 서양 문화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극복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동양인이 서구 문화를 연기해야 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언어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그 문화 속에서 자란 것은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며 “하지만 내 가치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아닌 나 자신의 예술성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다양한 역할을 자유롭게 소화할 수 있게 됐다”고 자신의 성장 과정을 설명했다.

2001년부터 25년간 시애틀 오페라에서 활동 중이며 36명 정규 코러스 중 유일한 한국인 멤버인 이연수 메조소프라노는 “항상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며 “한국과 시애틀 오페라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연수는 실제로 3-4년간 음악 저널의 객원 기자로 활동하며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의 음악 소식을 한국에 전하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시애틀 오페라의 소식을 한국에 알리고, 한국의 음악 문화를 미국에 소개하는 일을 계속해왔다”며 “이번 한국인의 밤 행사도 그런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연수는 시애틀 오페라 정규 코러스의 전문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36명으로 구성된 정규 코러스는 2년마다 자체 오디션을 통해 재계약이 이뤄지는 전문 합창단”이라며 “세계적인 수준의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2세 신동 앤서니 김의 놀라운 재능

이날 행사에서 특히 주목받은 것은 12세의 한국계 미국인 앤서니 김이었다. 작년 가을부터 시애틀 오페라 무대에 서기 시작한 앤서니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세 정령 중 한 명을 맡아 주목받았으며, 이번 ‘토스카’에서는 양치기 소년 역할을 맡아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바이올린, 피아노, 오르간을 능숙하게 다루는 앤서니는 언어 능력도 탁월했다. “한국어와 영어는 물론 독일어도 조금 할 수 있고, 학교에서는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다”며 “오페라에는 이탈리아어가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이탈리아어도 곧 배우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무대 경험에 대한 질문에 앤서니는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리허설을 거듭하면서 익숙해졌다. 무대 조명 때문에 관객석은 앞줄 몇 줄만 보여서 오히려 덜 긴장된다”며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이 정말 즐겁다”고 천진난만하게 답했다.

패널들은 음악과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도 공유했다. 이연수씨는 “음악은 나 자신이다.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면에 있는 사람, 살아온 이야기가 음악의 감정과 정서에 묻어서 나오는 것이 음악”이라며 “그래서 25년간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프라노 이연지는 “한국인의 ‘한’이라는 정서가 이탈리아 오페라를 부르는 데 딱 맞는 연결고리가 된다”며 “이탈리아 오페라와 한국의 한은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서 오페라를 부를 때 국적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한국인이기 때문에 더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용훈도 “음악은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각 문화의 고유한 정서는 분명히 존재한다”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양 음악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예술가가 되는 것 같다”고 자신의 예술관을 밝혔다.

서은지 주시애틀 총영사는 축사에서 이 행사의 특별한 의미를 강조했다. “시애틀 오페라의 코리안 데이는 독일인의 밤과 함께 시작됐지만, 3회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코리안 데이를뿐이다. 이는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가 문화를 사랑하고 오페라를 사랑하는 열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총영사는 폐회사에서도 “전 세계에서 시애틀이 유일하게 코리안 데이를 개최하고 있어 총영사로서 매우 뿌듯하다”며 “이는 단순한 문화 행사가 아니라 한인 커뮤니티의 문화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인 커뮤니티가 문화적으로 더욱 성숙하고 발전하며 단합할 수 있도록 총영사관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행사는 프리쇼와 포스트쇼 외에도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중간 휴식 시간에는 한국 전통 음식과 음료가 제공됐으며, 공연 후에는 한국인 아티스트들과 관객들이 직접 만나 대화하고 사진을 찍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많은 한인 관객들이 처음으로 오페라 ‘토스카’를 관람했으며, 사실주의 오페라의 매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 관객은 “오페라가 이렇게 감동적일 줄 몰랐다. 특히 한국인 성악가들의 열정적인 공연을 보니 더욱 자랑스러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연지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오늘 밤 사랑은 예술이 되고 예술은 혁명이 됩니다. 푸치니는 이탈리아 작곡가이지만 우리는 오늘 한국인의 마음으로 듣도록 하겠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시애틀 오페라는 한국인 아티스트가 출연하는 공연에 맞춰 코리안 데이를 지속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다음 행사 일정은 아티스트 캐스팅에 따라 결정되며, 5월이 아닌 3월이나 9월에 개최될 수도 있다고 주최 측은 전했다.

시애틀 오페라 관계자는 “코리안 데이는 이제 시애틀 오페라의 중요한 연례 행사로 자리잡았다”며 “한인 커뮤니티의 열정적인 지원과 참여로 앞으로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가 5월 3일, 9일, 10일 3일간 공연된 가운데, 9일 공연이 특별히 ‘코리안 데이’로 지정되어 진행됐다. 시애틀 오페라의 코리안 데이는 이지역 오페라계에서 독특한 문화 교류 행사로 자리매김하며, 한인 커뮤니티의 문화적 자부심을 높이는 중요한 행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적인 행사는 시애틀 한인 커뮤니티의 문화적 역량과 시애틀 오페라의 개방적인 문화 정책이 만나 이뤄낸 결실로 평가되며, 앞으로도 한-미 문화 교류의 모범적인 사례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출처 : 시애틀코리안데일리(http://www.seattlek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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