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7월 10일 발표한 공관장 인사에서 장성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방산물자교역지원센터장을 신임 주시애틀총영사로 임명했다. 서은지 현 시애틀총영사는 주포르투갈대사로 자리를 옮긴다.
두 사람의 경력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번 인사가 단순한 자리 교체를 넘어 서로 다른 두 유형의 외교관이 교차하는 장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 총영사가 외교부 순환보직을 정통으로 밟아온 직업 외교관이라면, 장 신임 총영사는 외교관으로 출발했지만 중간에 산업부로 옮겨 통상 관료로 경력 대부분을 쌓은 이색 이력의 소유자다. 특히 그는 이재명 정부 출범을 전후해 한미 관세협상의 실무 최전선을 지킨 인물로 주목받는다.
서 총영사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턴대에서 정치학 석사를 취득한 뒤 1995년 외교부에 입부했다. 이후 주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 최초 여성 영사, 주베트남대사관 최초 여성 참사관, 주제네바대표부 최초 여성 공사참사관, 외교부 최초 여성 공공문화외교국장을 거치며 여성 외교관으로서 여러 ‘최초’ 기록을 세웠다. 2021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린 유엔평화유지장관회의 준비기획단장을 맡기도 했다.
2022년 3월 제17대 시애틀총영사로 부임한 서 총영사는 시애틀 총영사관 역사상 첫 여성 총영사라는 상징성을 안고 임기를 시작했다. 재임 중 한미수교 140주년 기념 한복 패션쇼, 한미동맹 70주년 한국전참전용사 초청 리셉션, 조수미·조성진 콘서트 등을 잇달아 성사시켰고, 시애틀 한인사회의 오랜 숙원이었던 시애틀 교육원을 25년 만에 재개설했다. 워싱턴주 ‘김치의 날’ 법안 초안 작업에도 참여해 신디 류 하원의원 등과 협력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2024년 재외동포 언론이 선정하는 베스트공관장상과 아시아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이름을 올렸다.
장 신임 총영사는 1997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부에 입부했다. 2011년 외교통상부 FTA협상총괄과 1등서기관으로 근무하며 자유무역협정 실무를 다뤘고, 정부가 통상 기능을 외교부에서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하자 산업부에 파견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대책단 부단장을 맡았다. 2014년 2월에는 산업부 경력채용 절차를 밟아 외교직을 버리고 일반직 공무원으로 전직했다. 외무고시 출신이 파견 근무 중 아예 외교직을 포기하고 다른 부처로 옮긴 것은 당시로서는 처음 있는 사례였다.
산업부에서는 국장급으로 승진해 신통상질서정책관을 지냈고, 이후 통상정책국장에 올랐다. 2024년 11월 한 경제포럼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편관세가 한국 경제와 개별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진단하며, 산업계와의 긴밀한 협의와 한중 통상관계의 안정적 관리 필요성을 미리 제기해 통상 리스크를 조기에 짚어낸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상호관세 25% 부과를 예고하며 관세전쟁이 본격화하자, 장 신임 총영사는 2025년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의 제2차 기술협의에서 한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다. 산업부 외에도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용노동부 등 여러 부처 인력으로 꾸려진 대표단을 이끌며 균형무역, 비관세조치, 경제안보, 디지털교역, 원산지, 상업적 고려 등 6개 분야를 실무 차원에서 조율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2025년 6월 4일) 이후에도 그는 통상정책국장으로서 협상 실무를 계속 총괄했다. 이 협상은 8월과 10월 두 차례 한미 정상회담을 거쳐 2025년 11월 14일 한미 양국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설명자료)’를 최종 발표하며 마무리됐다. 최종 합의에는 한국산 자동차·부품 관세 25%에서 15% 인하, 반도체 최혜국 대우 수준 보장,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조선업 1,500억 달러 및 전략투자 2,000억 달러),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국방비 국내총생산(GDP) 대비 3.5%까지 증액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같은 해 7월 국회 토론회에서는 미국이 중국 조선업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짚으며, 한미 조선 협력이 사실상 중국 견제 동참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설명해 협상의 전략적 맥락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후 KOTRA 방산물자교역지원센터장을 거쳐 이번에 시애틀총영사로 발탁됐다.
두 총영사의 경력을 비교하면 무게중심이 뚜렷이 갈린다. 서 총영사는 문화예술협력과장, 다자협력·인도지원과장, 공공문화외교국장 등 문화·공공외교 라인을 오래 거치며 커뮤니티와의 접점을 넓히는 데 강점을 보였다. 재임 중 성과도 교육원 재개설이나 한인 문화행사처럼 동포사회와 직접 맞닿은 영역에 집중돼 있었다.
반면 장 신임 총영사는 FTA 협상과 관세 실무처럼 숫자와 협상 테이블을 다루는 통상 분야에서 경력 대부분을 쌓았고, 특히 이재명 정부의 최대 대외 현안이었던 한미 관세협상을 실무로 이끈 경험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보잉 등 글로벌 기업이 밀집한 워싱턴주에서 경제·통상 현안을 다뤄야 하는 시애틀총영사관 업무와는 직접 맞닿아 있는 이력이다. 서 총영사가 다져온 동포사회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장 신임 총영사가 어떤 방식으로 경제외교에 무게를 실을지가 앞으로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장 신임 총영사의 이력을 두고 이번 인사의 성격을 한 가지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외무고시를 거쳐 외교부에서 경력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순수 외부 인사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2014년 이후로는 외교부 순환보직 체계에서 벗어나 산업부 소속 일반직 관료로 활동해왔다는 점에서, 서 총영사처럼 외교부 내부 인사 라인을 밟아온 전형적인 직업 외교관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외무공무원법은 외교 업무에 필요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인사를 별도로 재외공관장에 임용하는 ‘특임공관장’ 제도를 두고 있다. 하지만 외교부가 이번에 공개한 인사자료에는 장 신임 총영사가 이 제도에 따라 임용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담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 인사를 정치적 성격의 ‘보은 인사’로 단정할 근거도, 반대로 통상적인 외교관 순환보직으로 단정할 근거도 현재로선 뚜렷하지 않다. 다만 한미 관세협상 실무를 총괄한 경력만큼은, 정치적 배경과 무관하게 이번 인사의 실질적 무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애틀 한인사회가 지난4년 4개월간 ‘최초의 여성 총영사’라는 이름 아래 켜켜이 쌓인 서 총영사와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 새로운 얼굴을 맞이하게 됐다는 점이다. 문화외교로 동포사회 곳곳을 누비던 발걸음이 관세협상 실무에 밝은 새 총영사의 걸음으로 바뀌는 이 시점이, 서북미 한인사회에는 지난 임기를 돌아보고 다음 장을 기대하는 조용한 이정표로 남을 듯하다.
출처 : 시애틀코리안데일리(http://www.seattlek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