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수 지휘자가 이끄는 워싱턴 챔버 앙상블이 19일 오후 페더럴웨이 퍼포밍아트센터에서 가을 성가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600여 명의 관객이 참석한 이번 공연은 4Culture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무료로 진행됐으며, 지난 6월 660석 매진 기록에 이어 또 한 번 워싱턴주 교민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했다.
김법수 지휘자는 개막 인사에서 “지난 여름 콘서트와 마찬가지로 참 많은 분들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며 “연주회를 거듭할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순간이 영원으로 기억되는 시간, 오늘 이 시간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그런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감회를 밝혔다.
그는 이어 “올해 워싱턴 챔버 앙상블은 킹 카운티의 문화재단인 4Culture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며 “그 혜택을 여러분께 돌려드리고자 오늘 콘서트를 무료로 개최할 수 있어서 굉장히 기쁘고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콘서트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성가곡들로만 구성된 특별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총 1시간 20분간 중간 휴식 없이 진행된 공연은 두 개의 무대로 나뉘어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첫 번째 무대에서는 피아노 반주만으로 워싱턴 챔버 앙상블이 추구하는 세련되고 정제된 화음을 통해 아름다운 현대 성가들을 들려줬다. 모차르트의 “Exultate Jubilate(환호하라 기뻐하라)”로 시작된 프로그램은 권수현 소프라노의 깔끔하고 투명한 음성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대 조명이 은은하게 켜지고 객석이 조용해지자, 워싱턴 챔버 앙상블의 첫 번째 무대가 시작됐다. 오프닝을 장식한 것은 모차르트의 “Exultate Jubilate(환호하라 기뻐하라)”였다. 소프라노 권수현이 무대에 서서 첫 음을 낼 때, 객석에는 숙연한 정적이 흘렀다.
권수현의 맑고 투명한 음성이 극장 전체를 가득 채우자 관객들의 얼굴에는 경이로운 표정이 스며들었다. “환호하라, 기뻐하라”는 모차르트의 메시지가 600여 명 관객의 마음속 깊이 전달됐다. 이는 단순한 콘서트의 시작이 아니라, 성스러운 찬양의 여정으로 떠나는 신호탄이었다.
특히 한국의 젊은 작곡가 우효원의 “그가”는 이번 콘서트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김 지휘자는 공연 중 “여기서 그가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며 “이 곡은 한국의 최정상 합창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인천시립합창단이 미국에 와서 이 곡을 연주해서 아주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다”고 소개했다. 그는 “요즘에는 미국 합창단도 이 곡을 자주 연주하는 것을 본다”며 한국 작곡가의 작품이 미국 합창계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했다.
미국의 유명한 편곡자 마크 헤이즈가 편곡한 흑인영가 “그 누가 문을 두드려(Somebody’s Knockin’ at Your Door)”와 “가라 모세(Go Down, Moses)”는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김 지휘자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오늘 부를 곡은 약간 재즈스럽고 조금 흥겨운 그런 버전으로 들려드리겠다”고 설명했으며, 실제로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함께 찬양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조요셉의 솔로로 진행된 “가라 모세”와 최진혁의 “Praise His Holy Name(거룩한 이름 찬양해)”는 각각의 개성 있는 음색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 지휘자는 첫 번째 무대 마지막 곡인 “Praise His Holy Name”을 소개하며 “신나는 찬양으로 여러분들이 같이 찬양하는 느낌으로 그렇게 함께해 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번 콘서트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의미 깊은 순간은 최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시복 목사를 추모하는 시간이었다. 김법수 지휘자는 소프라노 채선미의 솔로 “내가 산을 향하여(I Lift Up My Eyes to the Hills)”를 소개하면서 이시복 목사에 대한 애틋한 회상을 털어놓았다.
“얼마 전에 뉴스에도 많이 났다시피 저희 단원이시고, 또 선교 합창단 지휘자시고 물결찬양단도 인도했던 이시복 목사님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됐는데 그때가 저희 연주 한 달 전이었습니다”라고 말한 김 지휘자는 목소리에 깊은 슬픔을 담았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고 저희가 그 마음을 추스르고 이제 연주를 하게 됐다”며 “이시복 목사님하고 제가 고등학교 때 친구인데 합창단에서 같이 노래했다”고 회상했다. “이시복 목사님은 노래를 너무 잘해서 성악을 전공했고 저는 그 수준이 아니었다”며 겸손하게 표현한 김 지휘자는 “2003년에 시애틀에서 만났고 저희 워싱턴 챔버 앙상블로 들어와서 정말로 큰 힘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무대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된 “항해자”는 이시복 목사를 위한 헌정곡으로 준비됐다. 직접 가사를 읽어주며 시작된 이 곡은 “나 비로소 이제 깊고 넓은 바다 간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손을 주는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나 비로소 이제 폭풍우를 뚫고 간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나를 잡아 주시는 그분은 나의 주인”이라는 가사로 인생의 항해를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앙인의 마음을 표현했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콘서트 마지막 순간이었다. 김 지휘자는 “이시복 목사님하고 이 곡은 이시복 목사님이 지난 6월 저희 정기 연주회 때 솔로로 했던, 그러니까 극장에서 불렀던 마지막 노래입니다”라며 “When We All Get to Heaven”을 소개했다. 그는 “앵콜곡을 엄청난 곡을 준비했었는데 다 치워버리고요. 마지막 이시복 목사님에 대한 환송의 곡으로” 이 곡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소프라노 채선미는 감기로 3주간 노래를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산을 향하여”를 아름답게 소화해냈다. 김 지휘자는 “채선미 씨가 저희 합창단에서 3주 동안 노래를 쉬었습니다. 감기가 지독하게 와서요. 그래서 오늘 제대로 회복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관객들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했다.
두 번째 무대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 “I AM” 등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힘차고 화려한 성가곡들이 이어졌다. 마지막을 장식한 “길을 만드시는 분(Way Maker)”에서는 최진혁과 권수현이 솔리스트로 나서 웅장한 피날레를 완성했다.
남성합창으로 진행된 “선한 능력으로(By Gentle Powers)”는 지그프리드 피츠의 곡으로, 나치 수용소에서 순교한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시에 곡을 붙인 작품이어서 더욱 깊은 의미를 전했다.
2010년 창단 이후 15년째를 맞은 워싱턴 챔버 앙상블은 현재 소프라노 12명, 알토 10명, 테너 7명, 베이스 7명 등 총 40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주자로는 퍼시픽 루터란 대학교에서 피아노 연주 학사를, 워싱턴 대학교에서 피아노 연주 석사를 취득한 송지영이 맡았다.
이번 공연에는 소규모 오케스트라도 함께했다. 1st Violin의 Susie Kim, 2nd Violin의 Sooyean Oh, Viola의 Maria Ritzenthaler, Cello의 Heejung Yoon, Bass의 Marie Hoffman, Trumpet의 Zachary Lyman, Flute의 Alea Lee, Timpani의 Denali Williams 등이 참여해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조화로운 앙상블을 선보였다.
김법수 지휘자는 고려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합창지휘 석사를, 워싱턴 대학교에서 합창지휘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베이스 솔리스트로도 활동하며 포레의 레퀴엠, 모차르트의 C단조 미사, 하이든의 천지창조, 헨델의 메시아 등을 워싱턴 대학교 심포니와 타코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바 있다.
한편 앙상블은 고 이시복 목사의 유가족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모아 GoFundMe 사이트를 통해 모금운동을 펼쳤으며, 모금된 2만 달러는 유족에게 위로로 전해졌다.
김 지휘자는 공연 중 “오늘 연주회는 너무 관객의 입장에서만 계시지 마시고 함께 찬양하는 느낌으로 해주시면 너무 좋겠다”고 말했으며, 실제로 관객들은 박수와 화답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흑인영가와 복음성가 부분에서는 관객들의 자발적인 박수와 환호가 이어져 진정한 ‘함께하는 찬양’의 의미를 실현했다.
이번 콘서트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고인을 추모하고, 지역사회를 위로하며, 음악을 통한 소통과 화합의 장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워싱턴 챔버 앙상블은 앞으로도 매년 6월과 10월 정기 연주회를 통해 워싱턴주 교민사회에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출처 : 시애틀코리안데일리(http://www.seattlek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