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더럴웨이의 한 개인 자택에서 열린 후원 모임이 단순한 선거 지지 행사를 훌쩍 넘어섰다. 1만 8천 달러라는 적지 않은 후원금이 단 한 번의 한인 모임에서 모인 것도 주목할 만했지만, 더 눈길을 끈 것은 한반도 평화, 전쟁 반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놓고 연방 하원의원과 한인 참석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토론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스트릭랜드 의원 스스로 “이렇게 깊이 대화한 건 처음이었다”고 말할 만큼 이날 모임은 이례적이었다.
지난 3월 21일 워싱턴주 페더럴웨이 류성현 씨 자택에서 연방 하원의원 매릴린 스트릭랜드를 위한 지지자 후원 모임이 열렸다. LA에서 온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 최광철 대표를 비롯해 주정혜, 제니퍼 정, 류성현, 김성훈, 황규호 등이 주요 호스트로 참여했고, 한인 지역사회 인사 2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총 1만 8천 달러의 후원금이 스트릭랜드 의원 측에 전달됐다. 참석자들이 개인당 최대 $3,500까지 기부할 수 있는 법적 한도 내에서 모금이 이루어졌다.
모든 진행은 박성계, 김민정님의 초반 주도로 영어로 이루어졌다.
모임은 스트릭랜드 의원의 약력 소개로 시작됐다. 의원은 1962년 서울 출생으로, 한국인 어머니 김인민 씨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군인 아버지 윌리 스트릭랜드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모두 참전한 군인으로, 한국 주둔 중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직접 겪으며 성장한 인물이다. 미국 남부에 정착했을 때 흑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 혼혈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은 환영받지 못했고, 이 부모의 여정과 희생이 스트릭랜드 의원의 정치적 원동력이 되었다고 소개됐다.
2021년 1월 3일 취임 당시 한복을 입고 선서한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의회 의원으로 전 세계적 주목을 받은 스트릭랜드 의원은, 한국계 흑인이라는 복합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의회 내 아시아태평양계 코커스(CAPAC)와 흑인 코커스(CBC) 양쪽에 모두 소속된 몇 안 되는 의원 중 한 명이다. 의원은 한복 착용 당시를 돌아보며 “어머니가 저를 찾아볼 수 있도록”이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코로나 제한으로 어머니는 현장에 오지 못하고 집에서 TV로 지켜봐야 했다고 전했다. 또한 “요즘은 K컬쳐등으로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미국인은 한국에 대해 잘 모른 경향이 있다. 겨우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북한과 1970년대 TV 시리즈 ‘매쉬(MASH)’ 정도다. 한국의 온전한 역사와 문화가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모임의 자주 거론된 것 중 하나는 한반도 평화법안이었다. 스트릭랜드 의원은 117대 의회(HR 3446, 2021~2022년)에서는 공동 서명자로, 118대 의회(HR 1369, 2023~2024년)에서는 원안 공동 발의자로, 그리고 119대 의회(HR 1841, 2025년)에서도 동료 의원들과 함께 법안을 공동 발의하며 세 차례 연속 법안을 지지해왔다. KAPAC 최광철 대표는 “매 의회마다 꾸준히 지지하는 의원이 많지 않다”며 스트릭랜드 의원의 일관된 행보를 높이 평가했다.
스트릭랜드 의원은 최근 브래드 셔먼·로 카나 의원이 주도하는 결의안에도 서명했다고 직접 밝혔다. 이 결의안은 행정부가 의회 승인 없이 북한을 선제 타격할 수 없도록 명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헌법은 의회의 승인 없이 전쟁을 선포할 수 없다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과 행정부는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국민 앞에서 먼저 설명하고 의회에서 표결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트릭랜드 의원은 이란 사례를 직접 거론했다. “이란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을 보라. 의회 승인 없이 전쟁이 시작됐다. 국민과 의회 앞에서 먼저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점령과 쿠바 합병 가능성을 공개 언급한 것도 지적하며, 북한에 대한 군사 행동 우려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상기시켰다.
이날 가장 오랜 시간 이어진 토론은 한반도 평화의 실질적 의미를 둘러싼 것이었다. 스트릭랜드 의원은 “평화를 원하느냐고 물으면 누구나 그렇다고 답한다. 그런데 평화의 정의가 무엇인지가 진짜 문제다. 통일을 뜻하는가, 아니면 공식적인 한국전쟁 종전을 뜻하는가”라는 핵심 질문을 던졌다. 현재 한반도에는 정전협정만 있을 뿐 공식적인 종전 선언이 없다는 사실도 언급됐다.
최광철 대표에 따르면 KAPAC 활동 초기에는 이산가족 문제, 개성공단 재개, 종전 선언 등의 사안을 의회에 개별적으로 촉구했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미국의 국익과도 일치하는 북미 관계 정상화라는 큰 틀 안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내 조사 결과를 인용해 미국인의 약 67%가 북미 관계 정상화를 지지하고, 58%가 공식 종전 선언에 찬성한다는 수치도 공유했다.
지정학적 변수를 둘러싼 논의도 거침없이 이어졌다. 스트릭랜드 의원은 “중국 공산당(CCP)은 군함과 잠수함, 군사력을 공격적으로 증강하고 있으며 대만 침공을 실질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폴란드까지 노리고 있고, 그렇게 되면 NATO 조약이 발동되어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러시아 편에 서서 병력을 파견하고 있는 현실도 북미 신뢰 구축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주장했다.
통일 이후 어떤 그림이 그려질 것인지에 대한 토론도 벌어졌다. 스트릭랜드 의원은 “역사적으로 남한은 농업 중심의 지역이었고, 북한에는 천연자원과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었다. 하나의 국가로 합쳐진다면 얼마나 강한 나라가 될지 상상해보라”며 통일 한반도의 잠재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동시에 “독일 통일도 NATO가 주도한 국제적 노력의 결과였다. 한반도 통일도 마찬가지로 국제사회 전체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현실적인 조건을 짚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은 점을 거론하며 “서방의 자유를 경험한 만큼 개방의 가능성이 있다고 봤지만, 주변의 구 군부 세력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또한 김정은이 여동생이 아닌 딸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평했다.
한 참석자가 “극우 세력이 워싱턴 의원들과 접촉해 윤 전 대통령 복귀를 추진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자, 스트릭랜드 의원은 “그런 시도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트럼프는 뭐든 가능하게 만드는 인물”이라며 “트럼프가 거액을 받으면 누구든 사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윤 전 대통령이 한국 국민의 선택을 받는 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 “한국이 미국에게 법치를 가르쳐줬다”… 2026년 중간선거의 중요성도 역설
모임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대목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그에 대한 한국의 민주주의적 대응을 평가한 스트릭랜드 의원의 발언이었다. 의원은 탄핵 직후 워싱턴 DC 한인 모임에서 한 발언을 직접 소개했다. “나는 대한민국이 세계와 미국에 어떻게 권력자에게 책임을 묻는지, 법 위에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 감사를 전했다. 계엄을 선포하자 의회가 거부했고, 탄핵했고, 이제 그는 감옥에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와 법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미국이 오히려 배워야 한다.” 일부 참석자들이 이 발언에 불편한 반응을 보였지만, 의원은 자신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15개월간의 국정 운영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평가가 나왔다. 스트릭랜드 의원은 “트럼프는 집권 첫날부터 물가를 낮추고 모든 것을 더 저렴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전쟁도 없애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물가는 오르고 있고, 수백만 명이 의료보험을 잃었으며, 의회 승인 없이 이란 전쟁을 시작했고, 석유와 비료 공급이 막혀 식량 가격이 다시 오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탈환해야 하는 이유로 소환장 발부 권한, 각료 탄핵 권한, 대통령 탄핵 권한을 꼽으며 “2026년 선거에서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거제도를 둘러싼 논의도 이어졌다. 스트릭랜드 의원은 공화당이 추진하는 ‘SAVE Act’를 비판하며 “결혼 후 성을 바꾼 여성이 여권이나 출생증명서의 이름과 일치하지 않으면 투표 자격을 박탈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인 절반이 여권조차 없다. 나도 내 출생증명서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이것은 유권자 억압이다. 미국의 문제는 선거 사기가 아니라 투표 참여율이다. 2024년 선거에서 9천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텍사스 주지사의 선거구 재획정과 캘리포니아의 맞대응, 버지니아의 사례까지 소개하며 “이상적이지 않지만 민주당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스트릭랜드 의원에게 오는 6월 24일 개최 예정인 한반도 평화 관련 기자회견과 행사 참석을 초청했고, 의원은 일정이 허락하는 한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스트릭랜드 의원은 또한 하원 외교위원회 인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인 공화당 영 김 의원도 예의를 갖추고 직접 찾아가 만날 것을 권유했다. “개인적으로는 민주당원으로서 다른 후보가 이기길 바라지만, 영 김은 매우 스마트하고 성실한 의원이다. 인도태평양 소위원장이라는 자리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찾아가서 대화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의외의 조언을 했다.
모임을 마무리하며 스트릭랜드 의원은 “이번처럼 한반도 문제를 이렇게 깊이 파고든 대화는 처음이었다. 늘 ‘한반도 평화’를 구호로만 외치는 자리가 아니라, 여러분이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의미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단순한 후원 모임의 틀을 깬 이날 토론이 인상적이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출처 : 시애틀코리안데일리(http://www.seattlekdaily.com)
[사진=김승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