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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설적인 흑인배우 시드니 포이티어 별세

오스카상 남우 주연상을 받은 전설적인 미국 흑인 남자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별세했다. 올해 94세다. CBS뉴스 등에 따르면 바하마 외교장관 프레드 미첼이 포이티어 사망을 확인했다.

미첼 장관은 유족들의 포이티어의 사망 사실을 알렸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포이티어는 부모가 바하마 출신이어서 미국과 바하마 두 나라 국적을 모두 갖고 있다. 바하마 외교차관 체스터 쿠퍼는 페이스북에 포이티어가 “아이콘이자 영웅이었으며, 멘토였고, 투사이자 나라의 보물”이었다고 애도했다.

포이티어는 ‘최초’라는 단어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1958년 흑인 배우로는 최초로 아카데미(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 ‘흑과 백(The Defiant Ones)’에서 백인 배우 토니 커티스와 함께 사슬로 묶인 채 탈출하는 죄수 역할로 서로의 애증을 잘 표현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또 1964년에는 영화 ‘들백합(Lilies of the Field)’으로 다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마침내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상을 거머쥐었다.

흑인 제대군인 포이티어가 수녀들을 도와 성당을 짓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린 영화다. 그는 2002년까지 흑인 배우 가운데 유일한 오스카상 수상자였다. 포이티어는 또 영화에서 최초로 백인 여배우와 키스를 한 흑인 배우 기록도 갖고 있다.

1965년 영화 ‘푸른 하늘(A Patch of Blue)’에서 시각장애인 백인여성과 사랑에 빠진 흑인 남성으로 출연했다. 포이티어는 2009년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시민에게 주는 미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았다. 그는 ‘최초’ 수식어를 달고 살았지만 자신은 ‘최초’보다는 그저 이미지에 맞는 역할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포이티어는 부도덕하거나 잔인한 역할은 맡을 생각이 없었다면서 평생 그런 역할은 단 한 번도 맡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 자신의 가치를 부정적으로 반영하는” 그런 역할을 결코 맡지 않았다고 말했다.

포이티어는 바하마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던 부모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토마토를 팔러 왔을 때 7삭동이로 태어났다. 7째 막내였다. 포이티어에 따르면 그가 살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작은 관을 샀고, 어머니는 성경봉독자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나 성경봉독자는 그의 모친에게 포이티어가 살아날 것이라면서 “그가 왕들과 함께 걷게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포이티어는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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